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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연십영 達觀臺 달관대

부용대 2015. 6. 15. 13:56

 

 

達觀臺 달관대

 

我有數尺軀(아유수척구) 나는 겨우 몇 척 되는 몸으로

 

半生寄塵埃(반생기진애) 반평생을 속세에서 깃들어 살았네,

 

今朝挾天風(금조협천풍) 오늘 아침에야 하늘 바람 끼고서

 

飛上最高臺(비상최고대) 가장 높은 대에 날아올랐네,

 

二儀分高下(이의분고하) 하늘 높고 땅 낮은 그사이에

 

三光自縈廻(삼광자영회) 해와 달과 별이 절로 돌고 있네,

 

招呼兩黃鵠(초호량황곡) 누런 고니 한 쌍을 불러오니

 

聊可與徘徊(료가여배회) 즐거이 함께 노닐 수 있어라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십여년전 매미 태풍으로 훼손되기전 달관대

              십여년전 매미 태풍으로 훼손되기전 달관대 (2002년 여행객 사진)

                      현재 모습

 

                     원본 글씨 십세동자 원진해(元振海) 글씨

                   1594(선조 27)1651(효종 2).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윤보(潤甫),

                         호는 장륙당(藏六堂).부친은 구정(龜亭) 원황(元幌)이다.

                        1616(광해군 8) 병진(丙辰) 증광시(增廣試)에 진사(進士) 348위로

                   합격하였고 효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사부(師傅)를 지내고 만년에

                   횡성현감(橫城縣監)에 이르렀다. 관아(官衙)와 궁중(宮中)의 문액(門額)

                   쓴 것이 많았는데 모두 명필이라 칭하였다. 경전(經傳)에 몰두하였고

                  성학(聖學)에 힘써 견문이 넓고 조예가 깊었다.

 

                 원본 글씨가 있으니 하루빨리 복원 하는 것이 후손된 도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