達觀臺 달관대
我有數尺軀(아유수척구) 나는 겨우 몇 척 되는 몸으로
半生寄塵埃(반생기진애) 반평생을 속세에서 깃들어 살았네,
今朝挾天風(금조협천풍) 오늘 아침에야 하늘 바람 끼고서
飛上最高臺(비상최고대) 가장 높은 대에 날아올랐네,
二儀分高下(이의분고하) 하늘 높고 땅 낮은 그사이에
三光自縈廻(삼광자영회) 해와 달과 별이 절로 돌고 있네,
招呼兩黃鵠(초호량황곡) 누런 고니 한 쌍을 불러오니
聊可與徘徊(료가여배회) 즐거이 함께 노닐 수 있어라
십여년전 매미 태풍으로 훼손되기전 달관대
십여년전 매미 태풍으로 훼손되기전 달관대 (2002년 여행객 사진)
현재 모습
원본 글씨 십세동자 원진해(元振海) 글씨
1594년(선조 27)∼1651년(효종 2).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윤보(潤甫),
호는 장륙당(藏六堂).부친은 구정(龜亭) 원황(元幌)이다.
1616년(광해군 8) 병진(丙辰) 증광시(增廣試)에 진사(進士) 3등 48위로
합격하였고 효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사부(師傅)를 지내고 만년에
횡성현감(橫城縣監)에 이르렀다. 관아(官衙)와 궁중(宮中)의 문액(門額)을
쓴 것이 많았는데 모두 명필이라 칭하였다. 경전(經傳)에 몰두하였고
성학(聖學)에 힘써 견문이 넓고 조예가 깊었다.
원본 글씨가 있으니 하루빨리 복원 하는 것이 후손된 도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