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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산하(再造山河)

부용대 2017. 2. 6. 20:46

재조산하(再造山河) -명 나라 사신 사헌의 말-

 

금년(2017,정유년)은 정유재란(丁酉再亂) 발발 420주년 되는 해이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나라 운명이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온 몸으로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나라를 건져 내신 분으로는 조정에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있었고 전선에서는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있었다. 이 두 분이야 말로 조선의 山河(나라)再造(중흥)하였던 것이다. 또 서애 류성룡을 재조산하의 명상(名相)이라고 부르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조산하(再造山河)”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임진년(1592, 선조25) 413일 왜란이 발발한 이후 삼도(三都: 한양, 개성, 평양)가 함락되고 임금은 의주로 몽진하여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았다가, () 나라의 참전을 얻어, 이듬해 계사년(1593, 선조26) 정월에 평양성 전투에서 승리하고, 왜군은 한양에서 철수하여 부산, 동래 등의 해안으로 가 굴혈을 파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서애 류성룡은 이 전 기간에 걸쳐, 정승으로 또는 파직된 채 무관(無官)으로 호종하며, 또는 도체찰사(都體察使)의 중책을 맡아 모든 군무를 통할 지휘하여 국난극복에 전력을 기울였다.

계사년(1593, 선조25) 10월에 선조 임금은 서애 류성룡을 영의정(領議政)에 임명하여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와 백성을 구제하는 책임을 맡겼다. 영의정이 되자마자 그 해 윤11(閏十一月), 명나라에서 행인(行人: 명 관직명) 사헌(司憲)이 사신으로 왔다.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와서 보고 상황에 따라서는 임금을 바꾸거나 세자와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도록 하는 분할역치(分割易置) 밀명을 띄고 온 것이었다. 그는 한양에 들어서기 전부터 여러 말로 위협하더니 임금을 만나서도 칙서를 내밀며 양위(讓位)하라고 압박하였다. 영의정 서애 류성룡은 감연히 이에 맞서서 사헌과 직접 간쟁(諫爭)하고 명군 장수 척금(戚金)을 통하여 지금 조선에서 군신(君臣), 부자(父子)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면 대사를 그르친다고 우회적으로 설득하여 마침내 사헌으로 하여금 임무를 취소, 포기케 하여 분할역치를 저지하였다. 사헌이 본국에 돌아간 뒤 조선으로 자문(咨文: 외교문서)을 보내었는데, 그 속에서 이위위임류모 필유재조산하”(“以爲委任柳某 必有再造山河”)(류모(柳某: 류성룡)에게 일을 맡기면 나라를 반드시 중흥케 하리라)라는 말까지 하여 서애 류성룡의 난국수습능력을 극찬하였다. 그 이후 재조산하(再造山河)”라는 말은 서애 류성룡을 언급할 때 곁들이는 용어가 되어왔다.

최근 이 말이 이순신 장군이 실의에 빠져있는 서애선생을 위로하며 한 말이다라고 하는 설명이 있으나 이는 출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쓴 듯하다. 아마도 KBS 드라마 징비록에서 문학적 픽션으로 삽입한 것을 사실로 믿은 듯하기에 그 초종(初終)을 살펴보는 것이다.

 

전 국회의원 풍산류씨대종회장 류돈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