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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연서원과 서애와 한강

부용대 2016. 9. 2. 11:32

한강 정구 선생은 1607년 서애선생 작고시 안동 부사로 재직하고 계시면서 만사와 제문을 올린 것입니다,

 

한강 정구의 류서애(柳西厓) 애도한 만사 2

경연에 있을 당시 으뜸가는 인물로서 / 經幄當年第一人
근세에 유례없는 군신 간의 의기투합 / 風雲際會近無倫
안정 이룰 계책으로 나라를 보전하고 / 安危至計存邦國
선은 권장 악은 말려 대신들 본보기라 / 獻替訏謨聳搢紳
대궐 안의 재상으로 청아하기 산림이요 / 館閣淸如巖壑相
임천에 처한 몸이 근심한 게 묘당일레 / 林泉憂是廟堂身
두 편의 남긴 차자 충정을 담았으니 / 兩篇遺箚輸丹悃
느꺼운 눈물 성왕의 손수건을 적시리 / 感淚應沾聖王巾

우리 서로 벗이 되어 사귄 세월 사십 년 / 傾盖如今四十年
높은 이름 큰 절의 옛날에도 유례없어 / 高名盛義已無前
벼슬하여 묘당에선 천하 걱정 앞섰고 / 廟堂曾見先憂切
물러나 초야에선 혼자의 낙 누렸다오 / 林壑飜成獨樂偏
공께선 병이 깊어 내 손 한번 못 잡았고 / 公病未能携我手
이 몸도 신병 앓아 공의 주검 못 보내니 / 我痾還阻送公阡
초가을 이날 이때 한없는 서러움에 / 新秋此日愁無限
늘그막의 눈물이 샘물마냥 떨어지네 / 衰淚難堪落似泉

 

서애선생 부고 밭고 올린제문 (음력 66)

, 애통합니다. 생각하면, 지나간 정유년(1597, 선조30) 여름에 공과 서울에서 작별을 나누던 그 당시 공은 느긋하게 가슴속의 생각을 남김없이 드러냈는데 하나같이 모두 나라를 걱정하고 시사를 슬퍼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이후 덧없이 흘러간 세월이 11년이나 되었습니다. 공은 도성에 계실 적에도 오히려 나에게 안부를 물어왔으나 공이 남쪽 고향으로 오신 뒤로는 소식이 감감하였고, 중간에 겨우 한 차례 편지를 띄워 그리는 심정을 토로했을 뿐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만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이 고장에 부임하고 보니 공의 병세가 이미 위독해진 때였습니다. 공의 집을 찾아가 하룻밤을 묵으며 위문하기는 했으나 직접 얼굴을 보면서 손을 잡고 작별을 나누지는 못했는데, 공이 써서 나에게 넘겨준 몇 줄의 쪽지는 사연이 간곡하여 읽고 또 읽으며 감탄하면서 뭉클하게 일어나는 우정을 스스로 가눌 수 없었습니다. 그 뒤 두세 달 사이에 공의 심각한 병세를 걱정하지 않은 적이 없으면서도 한편 신명이 도와서 무사할 것이라고 축원해 마지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라의 불행이 갑자기 여기에 이를 줄을 알았겠습니까.
40년 동안 사귀어 온 관계가 이제 끝났습니다. 단아하고 정중한 의표와 단호하고 조용한 마음가짐, 정밀하고 용의주도한 식견과 깨끗하고 아름다운 행실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공께서 다시 한번 일어나 가슴에 쌓인 경륜을 남김없이 다 펴서 우리 백성이 그 혜택을 입게 했으면 하고 바란 것은 사실 조야 사람들의 다 같은 마음이었는데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말았으니, 저 푸른 하늘을 믿을 수 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나라의 운수가 약해진 데 따른 슬픔이 더 지극하니 어찌 내 사적인 관계로 인한 슬픔만 있겠습니까.
지난날 이미 공의 마루에 올라가 정겨운 대화를 나누지 못했으면서 지금은 공의 궤연(几筵) 앞에서 절하며 변변찮은 제물을 흠향하시길 기원합니다. 주위를 둘러볼 때 외로움으로 일어나는 슬프고 처량한 내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공의 영령이 계시거든 강림하여 이내 말을 들어주소서. , 애통합니다.

서애선생 장례시 제문 (음력 77)
, 공의 순결한 충성과 지극한 효성, 성대한 덕과 두터운 의리는 많은 사람의 이목에 깊이 젖어 있으며, 역사서에 그 내용이 기록되고 후학들이 모범으로 삼고 있으니, 어찌 굳이 선양하고 칭찬을 한 뒤에야 그런 줄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 고장에 부임했을 당시 때마침 공의 병세가 깊어져 있었습니다. 공은 병중에 내가 본 고을 수령으로 부임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말씀하기를, “아무개가 마침 이 고장에 왔으니 내 병이 혹시 나으면 봄이 돌아와 날씨가 따뜻할 때 서로 만나 우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하셨으나 공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병세가 이미 위독해져 나로 하여금 겨우 문밖에서 한 차례 위문하는 정도에 그치게 하였고, 끝내는 공의 주검을 보살피게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제 평소에 서로 사랑하던 의리와 늘그막에 감회가 많은 심정을 어디에 부칠 곳이 없게 됨으로써 마침내 천지간에 풀기 어려운 유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공의 주검이 마루에 놓여 있을 적에 다시 한 번 전()을 올리며 곡하는 정을 펴고픈 심정이 간절하였는데, 더구나 황천으로 영원히 돌아가는 지금 상여 줄을 잡고 보내드리고픈 심정이 우리 사이의 지극한 정으로 볼 때 어찌 지극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지병으로 신음하던 끝에 갑자기 위급한 증세가 일어나, 행여 관청에서 금방 죽음으로써 관리와 백성들로부터 수치를 사지나 않을까 두려운 나머지 퇴직을 비는 소장을 재차 올렸는데, 아직 파직한다는 명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방 안에 엎드려 아픔에 시달리는데 온갖 병이 침범하여 제물을 올리는 것조차 몸소 행하지 못하고 장사를 치르는 장소에도 못 가니, 아픈 심정이 가슴을 저며 오장이 다 흔들립니다. 인간 세상에 유감스러운 일이 뭐가 이와 같은 게 있겠습니까. 정신만 아스라이 달려가니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공이시여, 영혼이 계시거든 이내 심정을 굽어 살피소서.

 

류 대헌(柳大憲) 경심(景深)의 산소에 올린 제문 (귀촌)

공께서는 소년 시절에 우리 고을로 와서 장가 들고 여러 해 동안 머물러 계시면서 제 선군(先君 정사중(鄭思中))과 상종하며 학문을 절차탁마하여 정분과 의리가 깊고 두터웠습니다. 그리고 제 선군께서 저를 버리고 세상을 떠난 뒤에는 공께서 제 선군의 죽음을 슬퍼하고 저를 가련히 여겨 돌보아 주시는 정도가 또 범상치 않았습니다.
지금 제가 이 고장에 와서 당장 공의 묘소로 달려가 묘역을 둘러봄으로써 제가 평소 선군의 벗을 사모하던 마음을 스스로 달래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쌓인 병이 몸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데다가 또 갑자기 위급한 증후가 생겨 급히 사직하고 떠날 계획입니다. 이에 당초의 생각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보내 대신 술잔을 올리게 되어 부끄럽고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존령(尊靈)께서는 제물을 흠향하시고 제 정성도 굽어 살펴 주시지 않으렵니까?

 

류 희범(柳希范) 중엄(仲淹)의 산소에 올린 제문 (파산)

, 공의 정갈한 행실이며 차분한 자질은 우리 벗들 중에서 가장 찾아보기 드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처럼 경박하고 내실이 없는 자질을 지닌 자에게는 더욱 마땅히 본보기로 삼아 가르침을 받아야겠기에 서로 어울려 절차탁마하며 실로 경외하는 벗으로 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평소 공에 대한 기대가 각별하여 내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장차 원대한 성취를 거두실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하늘이 긴 수명을 허용하지 않아 우리 공으로 하여금 원대한 뜻을 가슴에 품은 채 일찍 세상을 떠나 세상에 남은 벗들에게 무궁한 슬픔을 안겨줄 줄을 알았겠습니까.
나는 이 고장에 와서는 즉시 공의 무덤을 찾아 참배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으나 질병이 낫지 않아 오랫동안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병세가 위급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떠날 계획이 다급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보내 대신 전을 올립니다. 공을 생각하니 슬프고 부끄러운 심정을 스스로 가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공의 신명이 나의 이 심정을 굽어 살피실 줄 믿습니다.

 

한강 문집 중에서 한국고전번역원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