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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록서원

부용대 2017. 7. 4. 15:34

악록서원원 승려 지선(智璿)이 처음 배움터를 연 것을 오대 때(958년 전후)이다,

천년학부(千年學府)란 말은 여기서 나온말이다, 976년 담주 태수 주동(周洞) 확장하여 서원으로 만들고,

그뒤 1001년 담주 태수 이윤칙이 전종황제에게 청하여 책을 하사 받는다,

이후 악록서원은 7차에 걸처 황제로 부터 편액, 책, 땅, 돈을 받으면서 그 명성이더해간다,

1015년에 원장 주식이 덕행이 알려저 진종황제가 국자감주부로의 자리를 내렸으나 사양하여

악록서원이라 사액한다,

1167년 복건의 주희는 악록서원 원장으로있는 장식과 한달 가까이 걸려 이곳에서

두달간 머물면서  주장회강이 이루어 진다,

여기서 주희의 민학과 장식의 호상학이 만나게 된다,

이후 주자학이 여러 학자에 의하여 전파되었다.

 1507년에 王守仁(1472~1528)이 이곳에서 설파한 양명학이 크게 일어나기도 하였다

오늘날 사회주의 중국을 만든 채화삼(1882-1931)과 모택동(1893-1976)이 모두 악록서원을 거처간다,

근대교육개혁에 따라 호남고등학당, 호남고등사범학교, 호남공업전문학교, 로 바뀌었다가

 1926년에 국립호남대학으로 변경된다.


石造門 우리나라의 홍살문과 같은 문이다,


모택동 친필


千年學府 서예가 구양순글씨집자

악록서원 입장료







진종황제의 사액현판은 항일전쟁당시 폭격으로 불타버렸고,

명나라때 석각한 편액이 전해 오던것을 1984년 복제한현판,



























서원박물관 도산서원 모형물


진설도